01/10/2021
오징어게임. 팽이랑 비슷하다. 초반에 불안하게 가다가 중반부터 탄력이 붙으며 세게 돈다. 마지막에 덜컹거리지만 무너지진 않는다. 계속 도는 팽이처럼 긴 여운을 남긴다.
평점을 짜게 준 사람 대부분은 2~3화까지 보고 실망하지 않았을까 싶다. 게임 참여 이유와 게임 규칙을 시청자에게 납득시켜야 하는 부분인데, 시나리오 쓸 때 난이도가 높았을 것이다. 비현실적 게임과 현실적 상황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하니. 결과적으로 그리 설득력있게 처리된 것 같진 않다.
대사나 캐릭터 면면도 뻔한 느낌을 주는 게 많다. 이걸 장장 두세 화에 걸쳐 보여주니 힘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을 딛고 본 게임에 접어들면 흡인력이 있다. 참신한 건 비극을 빚는 방식이다. 다크나이트의 조커처럼 참여자에게 끊임없이 딜레마를 제공한다. 6화에서 도덕적 딜레마가 절정에 달한다. 잔인한 딜레마를 순수한 어릴적 놀이와 연계한 게 독창적이다.
사실 룰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참가자가 없다는 게 이상할 수 있다. 공정하지 않은 룰에서 자신이 혜택을 보리라 낙관하기 때문이다. 피를 튀기는 게임 전후에 순한 양처럼 안내를 따르는 것도 기이하다. 게임을 하려면 질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기 위 말’로 표현된 참가자들은 ‘뫼비우스의 띠’나 ‘에셔의 계단’에 갇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미술 감독이 에셔에게 영감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세트가 주는 느낌도 그렇다. 승자는 돌아와도 게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징어게임은 영원히 반복된다. 반복됨, 영원 회귀, 영원히 도는 팽이. 살아남은 자는 반드시 게임을 다시 하게 된다.
이정재는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다. 정호연와 이유미는 최고의 콤비이자 캐릭터였다. 감독이 새벽 역으로 정호연을 만난 게 축복이라고 했는데 실로 그렇다. 여린 아이가 살아 남기 위해 가시를 바짝 세운 느낌을 너무나 잘 전달했다.
편집에서 에피소드당 10~15분씩만 잘라냈다면 더 박진감있게 전개됐을 것 같다. VIP들이 게임을 즐긴다는 설정 말고 다른 설정을 찾을 순 없었을까. 최악의 클리셰다.
오징어게임이 이렇게까지 세계적 반향을 일으킬지 다들 예상 못했다. ‘사회를 거울로 삼은 잔혹드라마’에 관한 한 한국을 따로 잡을 곳이 없다. 그런 드라마를 널리 퍼뜨리는 데 넷플릭스만한 곳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