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2026
언바운드 창작거점 프로젝트 선정작가 전시
Enchanted Land
주지수
2026년 5월 20일 (수) - 5월 31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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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끄럽지 못한 융합
어느 한적한 미국 시골 마을, 거대한 노란 스쿨버스를 기다리던 아이의 기억은 사슴의 뿔처럼 선명하 다. 하지만 한국으로 건너온 후, 거울 속 나의 모습은 완벽한 한국인임에도 내면은 끊임없이 이질적인 공기 위를 부유해야 했다. 튀지 않으려는 사람들 틈에 섞여 평범함을 연기했지만, 두 개의 문화 사이 에서 나의 정체성은 매끄럽게 봉합되지 못했다. 나는 결국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채, 끝없이 갈망하며 주변을 서성이는 ‘이방인’이 되었다.
2. 강박이 만든 리듬
해양 과학자였던 아버지 덕분에 자연의 거대한 순환을 일찍이 목격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마주한 세상은 과학적 법칙보다 불확실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불안은 나에게 강박처럼 다가왔다. 나는 이 불 안을 잠재우기 위해 휘발되는 생각들을 몸짓으로 새기기 시작했다. 무의식이 우리의 인식보다 빠르듯, 나는 계획 없이 붓을 들고 실을 엮는다. 숨 쉬는 것이 당연해서 무감각해졌던 감각들이 노동 집약적인
행위 속에서 비로소 되살아난다. 나에게 예술은 불안한 현실을 잊기 위한 도피가 아니라, 순간적인 감흥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이며 나만의 질서를 만드는 생존의 수행이다.
3. 우리가 사라진 뒤의 온도
이방인의 필터로 바라본 세상은 인간 중심의 서사가 지워진 곳이다. 나는 인류가 사라진 뒤, 눈에 보 이지 않는 포자들이 퍼져 문명의 잔해를 뒤덮는 풍경을 상상한다. 그곳에서는 이기적인 태도가 곧 살 아남는 방법이 되고, 낯선 생명체들이 군집을 이루며 적응해 나간다. 내일의 모습은 흐릿하다.
나의 작업은 그 기이하고도 아름다운 멸망 이후의 숲을 기록하는 일이다. 파괴된 것들 위로 피어난 이 낯선 생명력은, 역설적이게도 불안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묘한 위로와 따스한 온도를 건넨다.
-주지수 작가노트
주지수의 작업은 인류 멸종 이후의 세계를 시간과 공간이라는 두 축으로 재구성한다. 회화는 인간 문명이 정지한 후에도 어김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태피스트리는 그 시간을 토대로 새롭게 형성된 공간을 드러낸다. 결국 작가에게 포스트-아포칼립스는 종말의 이미지가 아니라, 지구에서 인간이라는 필터를 벗긴 ‘현재’다. 나는 그 안에서 우리가 미처 감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얼굴을 상상해 본다.
글 최수연 중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