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6/2026
[금도끼 #261] AI 시대, 석관동 도당제가 던지는 질문
요즘 어딜 가나 AI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AI가 나오면서 더욱이 과거보단 미래에 사람들의 시선이 가는 것 같습니다. AI가 세계를 통째로 뒤집어 버릴 것만 같은 사회에서 과거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우리의 오래된 문화 중 하나인 민간신앙과 석관동 도당제를 살펴보려 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민간신앙을 “종교적 체계 없이 민간에서 전승되는 주술적인 종교용어”라고 정의합니다. 이 정의는 민간신앙을 다루는 학문인 민속학에서의 ‘민속’ 개념과 현대의 주류 ‘종교’ 개념을 같이 두고 봤을 때, 더 선명해집니다.
한국민속대관에서 민속은 “민속(民俗)이란 문명국가(文明國家)의 서민사회(庶民社會)에 전승하는 잔존문화(殘存文化)이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민간신앙과 대비되는 현대의 주류 종교를 인위적 종교라 구분하며, 교조(敎祖)에 의한 교리(敎理)가 문서화(文書化)되고 이것을 중심으로 구성된 인위적 조직이라 설명합니다. 즉, 오늘날 우리가 다루는 민간신앙은 인위적 종교적 체계 없이 일반인들의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고 전승되어 현재까지 남아있는 주술적 신앙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민간신앙은 전 세계 모든 문화권에서 발견되지만, 현재는 대부분 주변부에 머물러 있습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에게 익숙하게 존재하던 신비스럽고 계산할 수 없는 힘이 인간이 계산하고 지배할 수 있는 힘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근대 혹은 근대 이후의 시대를 살고 있으니 신비스럽고 계산할 수 없는 힘이 작용하는 민간신앙을 거부하고 방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처사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 신비스러움과 계산할 수 없는 힘을 다루는 민간신앙이 모든 문화권에서 나타났고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이는 민간신앙이 단순한 과거의 잔재가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와 일정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오늘 다룰 석관동 도당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도당제는 민간신앙에 속하는데, 한국의 민간신앙은 주로 가신(家神), 마을신, 무속, 풍수신앙 등으로 구분됩니다. 이 중 여전히 많은 곳에서 전승되고 있는 무속은 신내림을 받아 신을 모시고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무당을 주축으로 전승되고 있는 자연발생적 종교입니다.
무속에서 신앙되는 신은 가신과 마을신 그리고 천신과 칠성신 등의 천상신들로, 민간신앙에서 신앙되는 신들이 종합됩니다. 그리고 이 무속의 제의 굿들은 주로 무당 자신의 굿인 무신제, 집에 있는 신들을 위한 가신제, 마을신들을 위한 동제(洞祭)로 분류됩니다. 오늘 살펴볼 석관동 도당제는 이 중 동제에 해당합니다.
동제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마을을 수호하는 마을신에게 해가 바뀔 때마다 봄 또는 가을로 날을 잡아 제를 올리는 주기적 제의입니다. 동제는 한국의 거의 모든 마을에서 발견되었고, 마을과 지역적 특성에 따라 그 이름과 형태는 조금씩 다릅니다. 그러나 그 본질은 나쁜 기운을 제하는 제액(除厄)과 땅과 바다 생산물의 풍요를 바라는 기풍(祈豊)/풍어(豊漁)를 기원하는 것으로 비슷합니다.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에서 1912년 석관동을 조사한 결과 당시 석관동 대지의 2/3가 논이었습니다. 이에 농경사회였던 석관동에서 풍년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동제가 형성되고 전승된 것은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오늘날 석관동에서는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지만, 도당제는 여전히 마을의 안녕과 제액을 기원하는 제의로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석관동 도당제는 석관동 중앙회의 주관으로 매년 음력 10월 1일에 석관동 도당에서 진행됩니다. 도당굿은 따로 하지 않으며, 유교식으로 제물을 준비하고 제를 지냅니다. 석관동 도당은 현재 석관파출소 인근인 석관동 340-328번지에 있습니다. 원래는 천장산 치마바위 자락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1724년 경종의 능인 의릉이 조성되면서 출입이 어려워졌습니다. 이후 현재의 래미안석관아파트 인근으로 옮겨졌으며, 아파트 건설 과정에서 지금의 위치로 다시 이전되었습니다. 현재의 도당은 래미안석관아파트 시공사가 건립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실현하기에 앞서 먼저 꿈꾸고 계획하는 존재입니다. 이 관점에서 도당제와 AI를 바라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도당제는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바라는 꿈속에서 실천되었습니다. 과학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서 자연의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공동체 차원의 제의를 이어왔으며, 이는 오랫동안 사회를 유지하는 중요한 문화적 장치로 기능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오늘날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새로운 기술에서도 발견됩니다.
AI와 과학 기술 역시 더 안전하고 풍요로운 삶을 만들고자 하는 인간의 꿈속에서 발전해 왔습니다. 다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술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자본 축적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기술은 단순한 수단을 넘어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집중되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신에게 안녕과 풍요를 기원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기술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줄 것이라 기대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기술은 현대 사회에서 과거 신앙의 역할을 일부 담당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기술이 신앙을 완전히 대체한 것은 아닙니다. 현대에 종교와 신앙은 과거보다 사회적 영향력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있습니다. 기술이 해결할 수 없는 공동체적 의식과 삶의 의미, 자연과의 관계를 성찰하는 기능 등을 여전히 수행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석관동 도당제에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바라는 공동체를 생각하는 마음이 엿보입니다. 석관동 도당의 신주에는 볍씨가 있습니다. 마을의 주업이 벼농사였기 때문에 씨앗을 목숨과도 같이 여겼기 때문입니다. 제물로는 곡식과 소를 바쳤는데, 현재는 도축법 때문에 소를 잡지는 못하지만, 과거에는 소를 잡아 소머리와 꼬리, 4족을 올리고 나머지 고기는 마을 주민에게 평등하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는 효율성 및 실질적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멀 수 있지만, 단순히 미신 또는 문명보다 저급한 것으로 평가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단순히 풍요를 기원하는 의례를 넘어 공동체 구성원들이 생명과 자원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고자 했던 삶의 방식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라는 격언을 떠올려 봅시다. 그리고 역사를 잊은 채 미래를 꿈꾸는 사람을 떠올려 봅시다. 그는 그가 생각하는 미래를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과거로부터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이었는지 배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불행히도 그런 자가 권력을 가진 경우,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힘’입니다. 빠르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고 가장 원초적인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실은 이는 우리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매일 뉴스에서 팔레스타인과 이란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전쟁과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분쟁의 원인은 매우 복합적이지만, 인류는 오랜 역사 속에서 법과 외교, 민주주의와 국제협력 등 폭력 이외의 갈등 해결 방식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전쟁이 선택되는 현실은 우리가 과거로부터 충분히 배우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를 통해 배우고 사유하고 실천하는 것이 미래를 여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과거를 기록하는 이유입니다. 단순히 미래가 더 나아질 것이라 믿는 마음으로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민간신앙에서는 자연을 포함한 지역의 모든 구성원의 안녕을 빌었던 겸손하고 순수한 마음을 배울 수 있고 과학 기술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효율적 방법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미 더 나은 미래의 씨앗이 숨겨져 있습니다. 따라서 과거의 신앙을 기록한다는 것은 단순히 사라져가는 문화를 보존하는 일을 넘어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와 오늘날의 기술문명을 함께 비춰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2026년 성북마을아카이브는 성북구의 종교와 신앙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집중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올 기록물들이 여러분들에게 더 나은 현재와 미래를 위해 사유하고 실천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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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주민들이 당산나무에 모여 기도하고 있다.(AI 생성 이미지)
2. 개인 및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시민들이 과학실에 모여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AI 생성 이미지)
3. 석관동 도당 전경(ⓒ성북문화원)
4. 2023 석관동 도당제(ⓒ성북문화원)
5. 2023 석관동 도당제(ⓒ성북문화원)
6. 천장산 치마바위(ⓒ성북문화원)
7. 석관동 도당의 신주(ⓒ성북문화원)
8. 2019 석관동 도당제 제물(ⓒ성북문화원)
9. 2021 석관동 도당제 제물(ⓒ성북문화원)
10. 당산동 부군당(ⓒ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11. 보광동 부군당제에 사용하기 위해 만든 순대*(ⓒ서울역사아카이브)
* 이런 근대화 과정을 막스 베버는 ‘합리성’이 작동하는 과정으로 바라보았습니다. 합리성은 가치 합리성(실질적 합리성)과 목적 합리성(형식적 합리성)로 구별되는데, 가치 합리성은 자신에게 부과된 의무, 명예, 종교적 소명 등을 준거로 설정된 가치에 적합하게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고 목적 합리성은 목적의 가치 등은 고려하지 않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적합한 방법을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막스 베버는 이 목적 합리성에 의한 합리화 과정의 진전이 근대 서유럽 자본주의의 본질이라고 보았습니다.(신혜경, 『벤야민&아도르노: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
*부군당은 서울 및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 지역에서, 도당은 경기도 지역에서 쓰인 명칭으로 모두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을 가리킵니다. 보광동 부군당제는 음력 정월 초하루에 유교식 제사를 지낸 후 마을굿으로 진행되는 마을 제사입니다. 제사의 주관과 진행은 원주민들이 만든 명화전계가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순대는 통돼지와 함께 가장 중요한 제물로 여겨지는 음식이자 부군당제에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나누어 먹는 잔치 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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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한국민속대관』.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1980.
신혜경, 『벤야민&아도르노: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 김영사, 2009.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접속: 2026.06.1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 (접속: 2026.06.11)
성북마을아카이브, https://archive.sb.go.kr/ (접속: 2026.06.11.)
서울역사아카이브, https://museum.seoul.go.kr/archive/ (접속: 2026.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