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022
NAMIB
류동혁 사진전 - PROJECTION
일시 : 2022년 9월 21일(수) ~ 10월 19일(수)
서평
4분의 1을 본다
문법적으로 잘 찍은 사진, 못 찍은 사진, 마음이 편해지는 사진, 불편해지는 사진 따위로 나누는 것을 경계한다. 일찍이 수전 손택은 (1977)에서 “피사체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빗나간’ 프레임이 보여주는 정직함과 굳이 명암을 다스리지 않아서 엉망이 되어버린 색상의 대비 때문에 아름답게 보인다. 이것은 아마추어리즘 혹은 부주의가 빚어낸 아름다움이다. 이렇듯 사진을 평가할 때에는 늘 이중적인 미적 기준이 도입되기 마련이다.”라며 “카메라는 자비로울 수도, 잔인해질 수도 있다. 사진에 대한 취향을 지배하는 초현실주의적 기호에 따르면, 이 잔인함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고 밝혀둔 바 있다. 그러나 이 책에 대한 찬사만큼이나 많은 이들에게 비판을 받은 이유가 상반된 주장을 아무렇지 않게 함께 담아 두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사진에 대한 해석이 전혀 다를 수 있음 그 자체이기도 하다.
회화도 작가나 장르, 주제와 시리즈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사진은 우선 현실을 찍었다는 점에서 그것이 구체에서 추상을 추구할수록 인간이 직면하는 내적 갈등은 오히려 더 증폭된다. 특히 포커스를 당겨 일반적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프레임보다 제한적으로 어떤 부분을 바라보게 할 때, 우리는 포착이 주는 엑스터시를 공유하거나 감성의 몰입을 경험함을 넘어 이것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이성적 고민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도덕적 메시지까지 담고 있다고 해설된다면, 기록의 시대 사진의 본성을 탐구한 손택을 비롯해 많은 사진작가와 기자들이 빗겨갈 수 없었던 이분법적 논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진을 보는 관점을 그렇게 동전의 양면처럼 만드는 것은 불행하고 아둔한 일일 것이다. 적극적인 감상자라면 섣불리 ‘이 사진은 어떤 느낌’이라고 단정 짓지 않기 위해 애쓰기를 권하고 싶다. 그리고 그러한 사진을 보여주는 작가와 환경이 더 많아지기를 소망하며 이 글을 써내려가고 있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불가항력 속에서 여러 대상을 병렬적으로 작업해온 류동혁의 이번 사진집 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단점을 강점으로 풀어온 솔직하면서도 전략적인 과정의 소산이다. 작가는 눈에 보이는 세계를 반영하는 것에 대한 집착에 매달리기보다는 펼쳐진 환경 안의 자신을 투사함으로써 그 때의 빛과 온도를 좀 더 추상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으로 제주의 바다가 보여주는 얼굴을 가까이에 담았다. 그것을 보며 우리는 취미 관광적 시선에서 벗어나 편안함과 불안함, 기쁨과 슬픔, 애틋함과 몽롱함 등 여러 정서로 교차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유 작가가 담은 수면에서 느껴지는 어떤 나이브함이 좋다. 일부러 기른 것도, 말끔히 자른 것도 아닌 약간의 수염을 실룩이며 자기의 생각을 말하는 작가를 닮았다. 24-105mm, 벌브 모드로 자신만의 포토리얼리즘을 구축해온 시간들을 제한된 프레임으로 만난다. 바다 사진은 기본적으로 달콤한 비린내를 풍긴다. 그것을 어떻게 담아내느냐는 선택이기도 하지만 지능과 성실함이기도 하다. 셔터는 게으름의 미덕을 짓밟고 나서야 나이브함을 건져 올리기도 한다. 카메라가 잔인해질 수도 있음을 나는 여기서 찾고 싶다. ‘윤슬’이라는 순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앞세운 천편일률적인 사진, 영상들이 주는 노골적인 선명함에 솔직히 질려 있었던 차였다. 마냥 풋풋하지도, 그렇다고 투박하지도 않은 자연스러운 진동에 흔들렸다. 작가의 세계를 더 알기 위해 제주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리고 류동혁이 투사된 천진함과 소박함 속에는 제주가 가진 아픔과 사람에 대한 여러 생각들이 내포되어 있다. 작가는 제주에 정착하게 된 까닭을 ‘흔들리는 자아’라는 내적 동기와 ‘타자화된 시선’이라는 외적 동기로 나누어 설명했다. “청소년기까지 나는 타자화되어 있었을 뿐, 진정한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다.”는 류동혁은 성인이 되어 ‘흔들림’이라는 특징을 스스로 덜 불편하게 여기며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풀어내온 것이다. 자신이 닮은 터전을 담아오는 과정은 외롭지만 스스로를 발견하면서 사회화하는 기능도 있다. 제주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의 여러 모습들만으로도 그 대상을 어떤 태도로 바라보고 있는지, 또 그래야 할 것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나는 작가가 “동서남북으로 바다색이 다르고...” 라고 이어나갈 때 “동서남북이라는 말이 참 생소하게 다가온다.”며 잠시 말을 잘랐다. 제주는 그런 섬이다. 모든 해안을 하루 안에 다 돌 수 있지만, 같은 시간대에 모두 담을 수도 없고 대략의 느낌을 보고 여기 어디인 것 같다고 이야기하려 하는 사랑 받는 곳곳의 모음이다. 하지만 이것은 알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인 것도 같다.
작가는 함부로 자신이 찍은 대상에 대해 잘 안다고 하지 않는다. 고정되어 있지 않고 타자화되기 쉬운 모든 것들에 대해 더 깊이 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 마음을 들여다보면 정지된 사진에서 어떤 내러티브가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현실을 우리는 알 리가 없다. 류동혁이 내려다본 물에는 결도 있고 겹도 있다. 투명한 그림자, 슬픈 아름다움, 도태된 생명력, 참고 있는 이야기. 그 중에서 우리는 4분의 1쯤을 볼 뿐이다. 그래서 나는 반대로 처음의 욕심을 접고 류동혁이라는 사람을 좀 더 천천히 알아가기로 했다. 하나의 계절을 만났을 때, 그 다음 계절을 생각하기보다는 그 계절에 충실히 임하는 마음이랄까. 마침 이 책과 가을에 있을 전시의 작품들은 작업 시기가 겹치지 않는다. 작업들을 미리 본 나는 관람객들이 그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그래서 작가의 흔들리는 자아를 조금은 덜 타자화된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시간을 만났으면 좋겠다.
배민영 예술평론가
갤러리 나미브 충무로
서울시 중구 마른내로 18 1층 NAMI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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