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5/2026
나의 '프레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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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에게는 처음 만남이지만 강한 끌림이 작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설명될 수 없는 그 힘은 절로 서로의 마음을 열어줍니다.
이라는, 글과 조우하고 마침내 그 신비한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공유하는 가치'겠다 싶습니다.
밤을 새워 새벽까지 궁리를 한다고 통효(通曉)가 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과 그 작동원리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효曉'님의 글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통효가 가능함도 알았습니다.
기꺼이 '함께 사는 우리'라는 선생님의 가치 속에 '모티프원'과 '프레농'을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_모티프원·프레농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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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우리
나의 '프레농'
_by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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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온전히 자연 속에서 책을 읽는 상상을 했다.
그런 상상을 할 때면 나는 늘 숲속에 있다. 숲 사이로 틈틈이 햇빛이 들어오고, 그중 유난히 환한 광장의 버드나무 아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버드나무 잎 사이로 빛이 흘러들고, 그 그림자는 잔디 위에서 조용히 춤을 춘다. 책을 읽다가 잠시 눈을 쉬게 하고 싶을 때면, 나는 그 그림자들의 공연을 바라보는 관객이 된다.
별것 없는 장면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 무엇도 나를 책으로부터, 또 자연으로부터 떼어낼 수 없을 것 같다.
처음 '모티프원'의 숙소 이미지를 봤을 때, 이상하게도 그 상상이 떠올랐다. 모티프원이 숲속 깊은 곳에 자리한 숙소도 아니고, 온전히 자연에 둘러싸인 푸른 공간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사진 속 방은 오히려 단순했다. 작은 책상과 침대가 놓여 있고, 별다른 장식 없이 새하얗게 비워진 방이었다.
그런데 그 사진 한 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높고 넓은 코너 전면창이었다. 두 벽면이 유리로 열려 있었고, 그 너머의 푸른 나무들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방 안은 간결하고 희었지만, 창밖의 자연광이 그 하얀 공간을 부드럽게 물들이고 있었다. 하얀색은 모든 색을 받아들인다고 하는데, 그 방의 흰색은 자연의 색마저 조용히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 방에 하루를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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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여행과 머무름의 형태
모티프원은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 안에 자리한 북스테이이자, 아티스트 레지던스로 시작된 곳이다.
2005년부터 운영된 이곳의 설립자는 이안수 씨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궁금증을 따라 기자로, 또 새물결출판사의 편집자로 일하며 여러 도시를 오갔다. 그러나 잡지사와 출판사 조직 안에서 그가 마주한 일은, 그가 꿈꾸던 현장의 생생함보다는 데스크 앞의 사무적인 업무에 가까웠다. 퇴근이라는 말은 있었지만, 진정한 의미의 퇴근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25년의 시간을 보낸 뒤, 그는 미국 유학을 계기로 비로소 자신이 원하던 타지의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후 세계 여러 도시를 떠돌며 그는 깨닫는다. 자신을 오래 움직여온 궁금증은 단순히 '여행' 자체가 아니라, 결국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가족을 위해 정착을 결심했을 때, 그는 자신이 떠나지 않아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를 상상했다. 예술가와 여행자들이 모여드는 아지트 같은 곳. 먼 도시로 나가지 않아도 전 세계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 그렇게 그는 헤이리 예술마을 안에 모티프원을 기획하게 된다.
그는 헤이리 예술마을 프로젝트에 참여한 건축가들 중에서도 젊고 실험적이며, 당시 한국에 지어진 건축물이 많지 않았던 조민석 씨를 찾아갔다. 이미 자기만의 문법이 굳어진 건축가와 함께했다면 공간은 더 안정적이었을지 모르지만, 이안수 씨가 원한 것은 무난하게 아름다운 숙소가 아니었다. 예술가와 여행자들이 머무는 곳이라면, 그 공간 역시 낯설고 실험적이며 새로운 감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모티프원은 단순히 아름답고 편안한 숙소에 머물지 않는다. 이곳에는 낯선 사람을 만나고, 우연히 책을 발견하고, 창밖의 자연과 방 안의 고요 사이에서 다른 생각을 시작하게 하는 틈이 있다. 머무는 일 자체가 하나의 창작적 경험이 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모티프원의 방들은 각각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서재라는 공용 공간을 통해 느슨하게 이어진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완전히 고립되지는 않는다. 방 안에서는 거대한 창을 통해 자연과 연결되고, 서재로 나오면 책과 사람, 대화와 사선이 다시 이어진다.
이곳에서는 사람과 거리를 둘 수 있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혼자 읽을 수 있는 책도, 혼자 바라볼 수 있는 예술도, 여러 사람의 시선을 통과하며 다른 의미를 얻는다. 모티프원은 그렇게 고요한 사적인 시간과 우연한 만남이 공존하는 장소가 되었다.
모티프원의 정식 명칭은 motif #1이다. '주제'를 뜻하는 프랑스어 motif와 첫 번째를 의미하는 #1이 결합된 이름이다. 이 이름은 이곳에 머무는 이들에게 묻는다. 여행이라는 시간 속에서, 혹은 인생이라는 더 긴 여행 속에서,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우선의 주제는 무엇인지, 당신 삶의 첫 번째 동기는 무엇인지.
현재 모티프원은 설립자 이안수 씨의 딸인 배우 이나리 씨가 호스트로서 찾아오는 이들을 환대하고 있다. 이나리 씨는 1994년 배우의 길에 들어섰고, 연기를 통해 사람과 사회,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져왔다. 무대 위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주하던 그는, 이제 모티프원의 호스트로서 이곳을 찾는 게스트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받아 적고 품는다.
그에게 모티프원은 예술가나 여행자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다. 마음속에 아직 풀리지 않은 질문을 가진 사람, 삶에 작은 균열을 내고 싶은 사람, 잠시 멈추어 자신을 다시 바라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삼남매가 함께 만든 프레농은 모티프원에서 이어지는 두 번째 공간이다. 모티프원이 책과 사람, 예술가들의 대화가 느슨하게 교차하는 장소 라면, 프레농은 조금 더 미니멀하고 조용한 쉼에 가까운 곳이다. 이곳에서는 무엇을 경험하기보다, 잠시 멈추고 비워내는 시간이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모티프원이 아버지 이안수 씨가 세계를 떠돌며 모아온 이야기와 사람들의 흔적으로 이루어진 공간이라면, 프레농은 그 기억을 이어받은 삼남매가 자신들의 감각으로 다시 정리한 또 하나의 쉼터다. 프랑스어로 '이름'을 뜻하는 프레농(Prénom)은, 관계 속 역할이나 타인의 시선 이전에 존재하는 가장 고유한 자신을 의미한다. 그래서 더 적은 물건, 더 넓은 여백, 더 단정한 빛의 흐름 속에서 머무는 동안 잠시 타인의 기대와 시선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의 이름으로 존재하며 자신의 호흡을 되찾게 만든다.
모티프원의 책장과 선반, 책상 곳곳에는 한 가족의 시간이 담겨 있다. 이안수 씨가 모아온 추억과 이야기, 그가 세계 곳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흔적을 이나리 씨는 조용히 이어받아 보존하고 있다. 동시에 그 기억 위에 새로운 환대의 방식을 더하며, 모티프원을 또 다른 쉼터로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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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교요한 문화 마을
예약한 날이 다가왔다.
햇살이 강하게 내려앉던 5월 중순이었다. 우리는 파주 출판도시를 천천히 걸었다. 유명하다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 잠시 들렀고, 걷다 우연히 발견한 헌책방에도 들어갔다. 평일 오후 한 시 무렵, 거리에는 좀처럼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파주 출판도시는 1990년대, 출판인들이 협동조합 형태로 추진하고 정부의 지원을 받아 조성되기 시작한 공간이다. 단순한 산업단지가 아니라 책과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한 시도였다. 그래서 출판사와 인쇄 시설만이 아니라 서점, 갤러리, 북카페 같은 문화 공간들도 함께 설계되었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과 책을 읽는 사람들이 같은 도시 안에서 머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설계에 이어 1990년대 후반에는 예술가 공동체를 중심으로 또 다른 움직임이 시작된다. 창작에 집중할 수 있는 마을을 만들기 위한 민간 프로젝트의 시작으로 만들어진 곳이 헤이리 예술마을이다. 예술가 공동체를 지향하며 출판 도시인 파주의 작가와 건축가, 음악가, 출판인들이 한곳에 모여 살아보자는 상상에서 출발한 마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풍경은 조금씩 달라졌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출판 생산 동계에 따르면 신간 발행 부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했고,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독서실태 조사에서도 성인 독서율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사람들은 현실의 피로를 잊기 위한 시간을 책보다 유튜브나 OTT, SNS 같은 빠른 매체에 더 많이 사용하게 되었고, 긴 글에 오래 집중하는 감각 역시 점차 약해졌다. 신간 도서는 꾸준히 출간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는 책은 줄어들고 있었다.
2025년 들어서 파주출판단지 상권은 벼랑 끝에 놓였다.
파주의 건물들은 대체로 낮고 조용했지만, 각자의 얼굴은 뚜렷했다. 어떤 건물은 굵은 곡선을 드러냈고, 어떤 건물은 커다란 콘크리트 덩어리를 비틀거나 겹치며 낯선 형태를 만들어냈다. 노출 콘크리트와 벽돌, 유리 같은 재료로 이루어진 건물들은 마치 현대 미술 작품처럼 거리에 놓여 있었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각각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헤이리와 파주 출판도시는 비교적 자유로운 건축적 개성을 허용한 공간이기도 하다. 통일된 상업 거리처럼 비슷한 간판과 외관이 반복되는 대신, 각 건물이 서로 다른 형태와 감각을 드러낸다.
유동 인구가 가장 많다는 오후 한 시 무렵, 우리는 '문발리 헌책방골목 블루박스'에 도착했다. 이름과 달리 실제 골목 안에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오래된 동네 골목 어귀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은은한 주황빛 조명이 가로등처럼 공간을 비추고 있었고, 빼곡한 책장 사이사이에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작은 자리들이 놓여 있었다. 헌책방답게 오래된 타자기와 낡은 사진, 작은 수집품들도 곳곳에 놓여 있었다. 메뉴 역시 오래된 동네 카페처럼 익숙하고 투박했다. 누군가 오래 모아온 시간을 그대로 진열해둔 공간 같았다.
하지만 그 빼곡한 책장 사이를 천천히 들여다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누군가의 손때와 기억이 남아 있는 책들은 조용히 꽂혀 있었고, 공간은 어딘가 오래된 추억처럼 천천히 식어가고 있었다.
파주 출판도시를 뒤로한 채, 조금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헤이리 예술마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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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한 가족의 온도
'프레농'의 미스티 방을 예약했다. 다른 방들과 달리 코너 전면창이 있어 두 면이 통창으로 이어져 있었고, 무엇보다 창가에 놓인 선명한 빨간 의자가 자꾸 눈에 밟혔다.
프레농의 현관으로 들어서면 신발장 옆으로 긴 복도가 이어진다. 복도 끝에는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공용 공간이 있고, 그곳에 닿기 전 미닫이문을 지나 각자의 방으로 들어갈 수 있다. 미스티는 2층 첫 번째 방이었다.
그런데도 방 안에 들어서는 순간 이상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높은 천장과 탁 트인 코너 창 때문이었을까. 살짝 열려 있는 창문 사이로 바람과 새소리가 천천히 흘러들어왔고, 그 소리는 음악처럼 방 안에 퍼졌다.
공간은 거의 무채색에 가까웠다. 장식도, 소품도, 시선을 붙잡는 화려한 요소도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창밖의 나무와 빛, 그리고 책상 위에 놓인 몇 권의 책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꼭 필요한 것만 남겨둔 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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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티프원'과 '프레농'은 하나의 뒷마당으로 이어져 있었다. 각 공간의 공용 서재이자 부엌인 과 은 통창 너머로 서로의 풍 경을 마주하고 있었다. 같은 가족 안에서 태어났지만 성격이 다른 두 공간 같았다.
우선 '프레농'의 을 지나 '모티프원'의 으로 향했다.
서재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오래된 집 특유의 향기가 났다. 이상하게도 내가 미국에서 지내던 오래된 집들과 비슷한 냄새였다. 오래된 목재와 종이, 여러 사람이 머물다 남기고 간 생활의 흔적이 섞인 냄새. 어쩌면 여행자들이 두고 간 물건이나 이곳에 머물며 남긴 시간의 향일지도 몰랐다.
미니멀한 프레농과 달리 이곳은 훨씬 빼곡하고 생활감이 있었다. 부엌 아일랜드 위에는 와인병과 컵, 식기들이 놓여 있었고, 책장 사이사이에는 사진과 그림, 오래된 소품들이 틈틈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도 공간은 이상할 만큼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벽면을 채운 거대한 책장은 이안수 씨가 직접 잣나무를 켜 장인과 함께 만든 것이라고 했다. 수많은 책과 물건을 품고 있으면서도 묵직하게 중심을 잡고 서 있었다. 책들은 자유롭게 꽂혀 있었지만, 한편에는 연도와 함께 정리된 책장이 있었다. 지난 20년간의 방명록이었다. 누군가는 짧은 여행의 기록을 남겼고, 누군가는 오래 꺼내두지 못했던 마음을 적어두었다. 책들 사이에 꽂힌 그 노트들은 이 공간이 단순한 숙소가 아니라 사람들의 시간이 쌓여가는 장소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잠시 발목 높이의 낮은 원목 좌식 책상 앞 방석에 앉아보았다. 바닥 가까이에 머물게 하는 그 높이는 내 모든 모습을 드러나게 했다.
약 2만 권 규모의 장서로 둘러싸인 이 서재에서는 어느 자리에 머물러도 책이 시야에 들어온다. 벽면을 가득 채운 원목 책장과 낮은 테이블, 곳곳에 놓인 의자와 쿠션은 이곳이 단순한 열람 공간이 아니라 책과 함께 생활하는 장소임을 보여준다.
한쪽 면은 바닥 가까이까지 이어지는 동창으로 열려 있어, 실내에 앉아서도 뒷마당의 나무와 햇빛, 계절의 변화를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은 흰 타일 바닥 위에 나뭇잎 그림자를 만들고, 빼곡한 책장 사이에 부드러운 온기를 더한다.
동창의 반대편에는 벽면 전체를 채운 책장과 부엌이 자리한다. 부엌은 서재의 일상성을 드러내는 요소로, 책을 읽는 공간과 음식을 나누는 공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부엌 한쪽에는 원목으로 된 공용 테이블이 놓여 있어 여러 사람이 함께 앉아 책을 읽거나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그 뒤편에도 책들이 촘촘히 꽂혀 있어 공간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서가처럼 느껴진다. 그 오른쪽에 발목 높이의 낮은 원목 좌식 테이블과 쿠션이 놓여 있다. 높은 책장과 낮은 테이블, 커다란 창과 흰 바닥이 서로 대비되며 공간에 여백과 깊이를 만든다.
이곳의 책들은 엄격하게 분류되어 있지 않고, 한 권마다 정해진 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책은 서재와 방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머무는 사람의 손을 따라 이동한다. 그래서 이곳에서 책은 고정된 지식의 물건이라기보다, 사람과 공간 사이를 여행하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분류와 선입견 없이 우연히 마주치는 책들, 그리고 그 책이 놓이는 자리마다 달라지는 분위기가 이 서재의 가장 큰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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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한참 동안 빨간 의자에 앉아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해가 천천히 내려앉자 화장실의 티파니 블루 타일은 낮보다 더 깊고 쓸쓸한 색으로 빛났다.
다음 날 아침, 일정한 뻐꾸기 울음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아직 안개가 완전히 걷히지 않아 햇빛은 나무 사이를 깊게 통과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뭇잎과 억새는 바람에게 소리를 건네고 있었고, 아침이 가까워질수록 새들의 노래도 조금씩 다양해졌다.
채비를 하고 차를 마시기 위해 으로 내려갔다.
모티프원의 서재가 채우는 공간이었다면, 프레농의 서재는 비우는 공간에 가까웠다. 이나리 씨가 호스트를 이어받으며 더한 자신의 '한 스푼'은 식물과 LP플레이어라고 했다. 그 LP플레이어는 한편 투명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이곳 역시 발목 높이의 긴 좌식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었지만, 나는 차를 우리며 주방 아일랜드 바 체어에 앉아 그 순간에 스며들어보았다.
이 서재 역시 한쪽 벽면 전체가 동창으로 열려 있어 실내와 바깥 정원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공간이다.
화이트와 라이트 그레이 톤을 중심으로 매우 담백하게 정리되어 있다. 벽과 천장, 바닥, 낮은 석탁까지 밝은색으로 맞춰져 있어 실내가 더 넓고 조용하게 느껴진다. 여기에 식물의 짙은 초록, 노란 꽃, 빨간 조명 같은 작은 색들이 포인트처럼 놓여 공간에 생기를 더한다.
창가 옆 투명 테이블 위에 LP플레이어가 있다. 역시 발목 높이보다 낮은 석탁 주변으로 폭신한 러그와 쿠션이 놓여 있다. 의자에 앉는 방식보다 바닥에 가까이 머무는 구성이어서, 이곳에서는 모든 것을 들어내어 편하게 앉아 차를 마시거나 책을 펼치고 햇빛을 바라보는 휴식 공간에 가깝다. 낮은 가구들은 창밖 풍경을 가리지 않고, 시선이 자연스럽게 정원과 나무 쪽으로 흐르도록 만든다.
한편 벽면에는 여러 장의 포스터와 그림이 갤러리 월처럼 걸려 있다. 피카소, 반 고흐를 연상시키는 아트 포스터와 드로잉, 작은 액자들이 크기와 색을 달리하며 배열되어 있어. 미니멀한 공간 안에 개인적인 취향과 예술적 리듬을 만든다. 깨끗하게 비워진 공간이지만 차갑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이처럼 사적인 물건과 그림, 식물이 적절히 놓여 있기 때문이다.
주방은 거실과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공간 안에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다. 흰색 수납장과 회색 아일랜드, 높은 바 체어는 공간의 미니멀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생활감을 더한다. 거한 차림보다는 사소한 요리를 만들고, 차를 내리고, 창가에 앉아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동선이 모두 한 공간 안에서 부드럽게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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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내가 읽은 책은 방명록 하나였다
미스티 방에 놓여 있던 방명록을 한 장씩 천천히 읽어보았다.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은 대부분 삶의 어떤 갈림길 앞에 서 있었다. 누군가는 고민 속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 또 누군가는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이곳을 안식처처럼 찾아왔다. 혼자 여행 온 사람도 있었고, 부부, 모녀가 함께 머물다 간 기록도 남아 있었다.
방명록 속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다음 사람에게 자꾸만 말을 걸고 있었다. 누군가는 혼자 있고 싶어 이곳에 왔다가 오히려 사람을 그리워하게 되었다고 적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더 많은 것을 바라며 살아왔지만 사실 사람에게는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돌아간다고 적어두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남긴 문장들 속에는 이상하게도 서로를 이해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결국 비슷한 외로움과 질문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 기록들이 조용히 보여주고 있었다.
짧은 문장들이었지만, 그 안에는 각자의 삶이 잠시 눌러앉아 있었다.
이안수 씨는 그의 책 『여행자의 하룻밤』에서 "여행이 물리적인 거리의 이동이 아니라 생각의 변화라면, 그는 지난 10년간 가장 긴 여행을 한 사람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것은 결국 사람이며, 누군가와 나누는 하룻밤의 대화가 십 년간 책을 읽는 것보다 더 깊은 흔적을 남길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모티프원과 프레농은 단순한 게스트하우스나 숙소에 가까운 곳이 아니다. '현재'에 머무는 사람들과의 나누는 이야기로, 과거나 미래에 사로잡힌 사람을 '현재'에 귀 기울이게 한다.
창밖의 나무와 바람 소리, 천천히 식어가는 차 한 잔, 책장을 넘기는 작은 소리 같은 것들. 평소라면 쉽게 지나쳤을 감각들이 이곳에서는 유난히 또렷하게 느껴졌고 나는 그 조용한 감각들 속에서, 각자의 사람들의 '현재'를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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